고은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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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사진미술관 기획전
[The Origin] 근원
2012년 12월 8일~2013년 2월 21일


ⓒ 강용석, 한국전쟁 민간인학살-경남 진주시 명석면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현장, Gelating Silver Print, 100x250cm, 2009


전시기획. 박현희(고은사진미술관 큐레이터), 강용석(백제예술대학교 교수)

고은사진미술관 본관과 신관에서는 2012년 12월 8일부터 2월 17일까지 사진의 근원과 본질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대규모 기획전 <근원 The Origin>展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디지털 사진이 범람하는 현 시점에서 사진의 정체성을 되새겨보고 진정한 사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사진은 170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 사진 고유의 특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예술로 부각되었으며, 타 장르의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오며 영상 시대의 중심에서 그 역할을 다해왔다. 사진은 그 자체로도 예술성을 인정받았지만, 특히 동시대 예술에서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활용되면서 시각예술 발전의 기여와 판도를 장악함에 있어 가히 최고의 전성 시대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컴퓨터와 카메라에 디지털 기술이 도입된 지 20년이 훌쩍 넘은 오늘날, 우리나라 사진계는 초를 다투어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사진의 범람으로 인해 소위 전통적 사진, 사진다운 사진의 위상이 질식 상태에 빠졌음을 실감한다. 물론 새로운 시대에 부합한 예술의 한 방식으로서, 매체로써의 역할과 갖가지 기술력을 동원한 디지털 사진도 필요하고 발전해야 하겠지만, 지금처럼 일변도로 기운 것이 한국 사진의 장래를 생각할 때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가에 대해서는 우려 깊은 의문이 든다.
사진의 본질은 무엇보다 사실성을 바탕으로 한 기록성에 있다. 사진은 사실적이어야 하며, 대상에 충실한 기록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사진예술의 본령이자 효시이다. 즉 현실의 현실적 수용을 전제로 한 전통적 사진의 뿌리와 그 순수성을 지켜나가는 것은 새로운 사진의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대하며, 결코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시간 속을 지금 우리는 지나고 있다. 사진의 당위성이 바로 거기 있으며, 그것이 사진의 기본 정신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유물이나 가치관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그것이 더욱 견고한 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오래된 것, 기본적인 것을 충실히 답습하고 새로운 것과의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발전을 꾀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온고이지신(溫故二志新)의 뜻을 무엇보다 되새겨야 할 때이다.
따라서 고은사진미술관에서는 이러한 시점에서 역사적 의미에서의 사진의 본질을 되돌아보고 그러한 정통성에 근거하여 작업하는 사진가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근원 The Origin>展을 통해 사진의 순수성과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 전시에 참여한 11명의 작가는 그러한 사진의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사진가들의 사진 성향을 미루어 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우선 고은사진미술관 본관에서 전시를 하게 되는 첫 번째 그룹은 사진을 재현의 매체로 여겨 대상을 추상적 또는 순수한 형태 변형으로 다루려 하고, 신관에서 작품을 선보일 두 번째 그룹은 사진을 사회 참여와 자아 성찰의 매개로 보아 자신과 사회에 대한 발언을 드러내고자 한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하는 사진가로는 한정식, 이완교, 이종만 그리고 오상조이다.
한정식은 <고요>시리즈를 통해 여러 정적인 자연 대상을 주요 피사체로 다뤄온 작가이다. 이번에는 흐르는 물을 소재로 사진의 셔터 타임을 중요한 문법으로 채택하여 어느 때보다 추상성을 더 강조하고 있다. 물결의 형태는 물의 소리보다는 오히려 아름답고 미끈한 몸의 형태와 결을 연상시킨다. 반면, 이완교는 숲과 나무, 그리고 바다의 형태를 거친 입자 속에 축소시키고, 그 속에서 의미를 추출해내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거친 입자 속에 섹슈얼리티가 내재된 것처럼 보여 추상의 한계를 넘어 이퀴벌런트(equivalents, 등가물)를 구사하는 듯하다. 이종만은 바닷가 바위와 자갈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풍경의 질감을 묘사하고 있다. 때로 자연의 시간을 나타내지만 그 속에 숨겨진 자연의 무늬가 만들어내는 소우주가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심상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세 사람의 사진과 오상조의 사진은 전혀 다르게 읽혀진다. 오상조는 역사적 풍경을 담담하게 기록해내고 있다. 나무의 껍질과 두께가 유구한 세월을 말해주듯이, 사진을 언뜻 보아도 전통과 민속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지금까지 오상조의 사진 속에 나타나는 일관된 표현이라 볼 수 있겠다.
두 번째 그룹에 속하는 사진가로는 최광호, 정주하, 이상일, 이갑철 그리고 김보섭, 권태균, 강용석이 있다.
최광호는 최근까지 컬러를 이용한 포토그램으로 새로운 사진적 심미성을 제시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시퀀스 사진으로 재현하고 있다. 보통 셀프 포트레이트라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찍어 자신의 심리 상태와 외형을 표현하는 작업이 있어왔다. 하지만, 최광호는 그것을 극적인 드라마로 설정해 자신의 존재를 스스럼 없이 사진 속에 드러내고 있다. 특히 현재의 삶보다 죽음의 허망함과 덧없음을 나타내는 듯한 그의 사진적 행위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정주하는 도시의 생활을 정리하고 산촌에서의 삶에서 느끼는 개인의 소소한 감동과 일상적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가능한 자신의 눈높이에서 특별하지 않은, 그러나 조금은 인공의 흔적이 묻어있는 풍경을 일관된 시선으로 담아냄으로써 자신만의 사진성(性)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상일은 노숙인의 포트레이트를 이분법 구조에 담아 상징적 대체의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생존의 방식이 드러나는 장소를 파노라마 프레임에 포함시키고, 그들의 인물을 장외에 위치시킴으로써 대상에 대한 소격을 유도한다. 따라서 인물과 환경을 분리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더 밀착해서 보게 만들고, 현대의 경제구조의 변방에 대한 의미를 되묻고 있다. 이갑철은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고 정리하는 방대한 작업을 해왔다. 특히 프레임의 공간과 배치의 능력은 그 어느 사진가보다도 독특하다. 민속적이고 토속적인 소재들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그는 그 소재들이 항상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구성한다. 김보섭의 사진은 풍경의 방법을 취하고 있지만, 소재는 육중한 도시화와 근대화의 형태들을 담아 인천이라는 지역적이고 지형적인 접근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인천 항구가 가지고 있는 물류교류를 거시적 시각으로 담고 있어 지역의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권태균의 사진들은 대통령의 측근에서 기록의 업무를 담당했던 시기에 찍었던 사진들로서, 사적 영역에서의 대통령의 일상을 르포르타주의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가 많은 다른 국가들의 원수에 대한 스토리를 라이프 잡지 같은 곳에서 봐왔던 방식으로 표현한 이 사진들은 대통령의 사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하는 사진들이다. 마지막으로 강용석의 사진은 한국전쟁 이후 혼란한 시기에 좌, 우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인해 죄 없는 민간인들이 집단학살 된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최근에 와서야 밝혀진 잔인했던 학살현장과 발굴 현장을 차분한 현재의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그 학살현장이 현재에도 제대로 기록되어나 보존되지 못하고 있음을 평이하게 재현된 사진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이상 11인의 사진가들은 제각각 표현방식은 상이하지만, 사진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지켜나가면서 그 본질에 충실히 작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질성을 가진다. 현대미술의 맥락 속에서 중요한 장르로서, 또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인정받음으로써 사진의 영역이 계속 확장되어 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번 전시가 사진 본래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 보고, 앞으로 펼쳐질 사진의 방향 또한 전망해 볼 수 있는 공고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들의 취지

오늘날 우리 한국 사진계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다.
사진이 미술계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고 표면상 사진이 전체 시각 매체에 인용되고 있음이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순수한 사진, 사진다운 사진은 사실상 질식 상태라 해도 좋을 정도로 위축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디지털 사진이 몰려올 때부터 예감되던 현상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도를 지나쳐 우려스러운 것이다.

디지털 사진이 사진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 발생적인 현상이요, 미래 지향적 사진의 한 방법론이 될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쏠림 현상인 것이다. 사진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 가며 고민을 해야 할 청년 작가들이 별 문제의식 없이 디지털로 일방적으로 쏠리고 있음은 그들 개개인의 장래만이 아니라 그것이 그대로 한국 사진의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어서 더 염려스러운 일이다.
그뿐 아니라 디지털 사진이 우리나라에 등장하기 시작한 지 이미 20년이 넘었다. 자극적인 것은 그 자극성으로 해서 등장할 때엔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오지만 그 자극성이 약화되면 싫증을 일으키기도 쉬운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그 지루한 되풀이는 자극성의 소멸과 함께 전통적 사진의 고루함보다 더 고식적인 염증을 수반한다. 요즈음 우리나라 디지털 사진이 봉착한 문제점이 바로 이것으로, 신선미와 자극성의 시효가 사라진 때문이다.

그 해결책은 역시 사진의 뿌리에서 찾아야 한다. 동시에 단순히 사진다운 사진, 전통성을 회복한 사진만이 아니라 사진의 전통적 맥락 안에서 새로운 방향,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모색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사진성의 회복부터 이루어야 한다.
사진성의 회복이란 사진의 현실로의 복귀를 뜻한다. 모든 예술이 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진만큼 현실성이 핵을 이루는 예술은 없다. 현실을 떠난 사진은 회화일 수는 있어도 사진일 수는 없다. 디지털 사진도 함께 키워나가야 할 사진적 방법론의 하나이기는 하다. 문제는 그것이 사진의 정체성에서 갈수록 벗어나 돌아올 줄 모른다는 데 있다. 사진은 사진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늘 제기되어 왔지만 이러한 사진적 정체성은 그것이 사진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할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한국의 세계화가 자기 정체성을 버리고 외세에 추종하는 것이 아니듯, 사진의 미래 역시 사진의 정체성 속에서 찾아져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진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미래 지향적 사진을 향하여 여기 모였다. 침체한 사진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운동을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들의 이 운동은 새로운 사진을 예감하고서의 운동이다. 사진의 정체성을 바탕한 사진이 사진의 중심에 서야 하고, 미래지향적 사진도 이 사진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할 때 당위성을 가진 ‘현대 사진’으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우리들의 모임이, 그리고 발표한 작품들이 그대로 사진의 미래는 아닐지 몰라도, 그 미래를 맞이하기 위한 맞이물로서 여기 모인 것이다. 사진의 정체성 위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진정을 환영해 주기 바란다.

2012년 12월 일 한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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