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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사진미술관 기획전
직면(直面)
2011년 10월 29일 - 2011년 12월 23일


ⓒ 김옥선, eugene the father sarah the daughter, Dgital C-Print, 100x126cm, 2007


사진, 혹은 철학의 실천


이왕주_부산대 교수

Ⅰ. 넘어져 자빠지기
사진은 나를 넘어 나자빠지게 한다. 넘어져서 자빠지게 하는 이유는 놀라서가 아니라 헛디뎌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헛디디는 이유는 심리가 육체를 어떤 식으로 간섭하는 데서 비롯된다. 육체에 대한 정신의 간섭. 이것이 모든 실수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아마 사진에서 나를 헛디디게 했던 상황이 바로 그것일 거라 믿는다. 실수란 결국 정신이 저지르는 잘못을 황급히 육체에 전가하는 결과들이다. 갑자기 다이나믹한 리듬으로 바뀐 음악 탓에 찻잔을 떨어트리는 카페 종업원의 실수도 이런 경우다. 경이, 매혹, 충격 등 거의 모든 정신의 일탈들에서 육체는 이런 모멸의 상황 속에 내몰린다. 그게 결국 몸을 나자빠지도록 하는 거다.
넘어 나자빠지기. 이것은 철학을 육체의 술어로 정의하는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자 알튀세의 새로운 어휘다. ‘철학은 경이로움에서 시작하는 것’ 이라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그는 ‘철학은 넘어 나자빠지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오랜 세월 비난의 표적이 되어왔다. 철학을 유한계급의 독아론, 관념론, 백일몽의 차원으로 푸 악 시켰다는 것이다. 알튀세는 이 새로운 어휘로써 이런 비난에 가담하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그는 철학이 육체의 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좋은 모양새가 아니라 넘어 나자빠지는 방식으로.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시대 이오니아의 현자 탈레스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은 ‘만물의 근원 곧 아르케를 물었기 때문’이 아니라 넘어져 자빠짐을 사건화시켰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해주는 그 일화야 유명한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에 등불 든 하녀를 앞세워서 밤길을 걸으며 별을 관찰하던 탈레스는 그만 발을 헛디뎌서 시궁창 속으로 넘어 나자빠지고 만다. 시궁창의 생쥐 꼴이 된 주인을 황망히 잡아 끌어올리면서 하녀가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주인님은 천상의 모든 것들은 다 잘 아시면서 바로 코앞에 시궁창이 있다는 건 모르시는군요’
그렇다면 철학은 이 모멸스러운 상황 어디에 있는가. 다소간 꼴사나운 모습이기는 하지만 넘어져 자빠짐으로써 코앞의 무지를 드러내고 있는 탈레스의 이 구겨진 육체 위에 있다. 몸이 이미 시궁창 오물을 뒤집어쓰고서야 비로소 정신은 코앞의 가까움을 드러낸다. 너무 늦은 것이다. 정신의 이런 때늦음은 늘 그런 식으로 육체를 망가뜨리곤 했다. 그것의 성취물인 철학은 나자빠진 육체의 상처를 딛고 피어난 꽃인 셈이다.
사진은 나를 넘어 나자빠지게 한다. 당연히 코앞의 무지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나자빠진 나의 육체가 지금 이 순간 나로 하여 철학 하게 (philosophieren) 한다.

Ⅱ. 변순철, 나르시시즘의 초상
1. 나르시시즘
내 연구실이 있는 건물에는 화장실마다 좁은 공간에 어울리지 않은 큰 거울과 널찍한 두 개의 세면대가 있다. 아침에 화장실에 갔을 때, 신입생티를 갓 벗은 듯한 남학생이 거울에서 좀 떨어진 위치에서 열심히 거울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을 막 열고 들어서는 이용자에게 그 위치는 맞은편 소변기 앞으로 다가서는 데에 조금 불편을 주는 어중간한 곳이었다. 용무를 보고 나올 때까지 그 학생은 거울 앞에서 연출하는 나르시스적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약간 몸을 사리듯 피하면서 문 열고 나서야 했다. 두어 시간쯤 지나서 내가 다시 화장실로 갔을 때였다. 또 누군가가 아까와 비슷한 그런 위치에서 거울 앞의 도취삼매경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오늘은 왜 이렇게 예의 없는 나르시스트들이 이렇게 많지? 생각하며 다시 아까와 같은 상황을 반복하며 빠져 나오는 순간 스치는 직감으로 그 학생이 두어 시간 전의 바로 그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게 되었다. 두어 시간 넘게 화장실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빈번히 화장실 거울 앞으로 회귀하기를 거듭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무엇이 그를 유혹하여 그렇게 자주 거울 앞으로 불러 세우는가.

2. 인정투쟁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자신의 이미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나르시스적 욕망을 거의 본능처럼 지니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그 대상이 자기 존재가 아니라 이미지라는 것이다. 나르시스를 매혹했던 것은 바로 그 이미지였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 저항할 수 없는 매혹은 치명적인 대가를 치르게 한다. 곧 생명이다. 소요 시간, 매혹의 열도, 몰락의 형식이 조금씩 다를 뿐 인간들은 모두 자기 방식의 나르시스적 운명을 답습하다 몰락한다. 평생 자기 이미지를 사랑하다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제멋에 산다’는 속언의 정확한 의미는 ‘제멋에 죽는다’다. 나르시스가 이미 이것을 섬뜩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우리의 자기애(auto-erotica)에는 나르시스와 차별화되는 다른 욕망이 끼어든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다. 여기서 자기애는 매개된 욕망, 우회로를 경유하는 섬세한 욕망으로 발전한다. 우리 사회가 ‘로빈슨 크루소의 무인도’가 아니니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멋은 이 욕망 때문에 복잡한 열정으로 탈바꿈한다. 결국, 순수한 제멋은 없다. 그것은 언제나 승인을 요구하는 열망과 함께 한다. 헤겔이 정확히 짚어낸 것처럼 승인의 요구는 인정투쟁이고, 인정투쟁은 처음부터 목숨을 건 투쟁이다.
제멋은 처음부터 자기 이미지에 빠져드는 허영의 욕망이다. 구조주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모든 자기애가 응시를 통해서만 탄생하기 때문에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응시는 궁극적으로 대타자를 경유하는 시선이다. 이렇게 되면 제멋은 훨씬 더 복잡한 회로를 통과하게 되는데, 가령 소타자(the other)의 시인과 대타자(the Other)의 승인을 동시에 획득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추동되게 되는 것이다.
나르시스와 차별화되는 이런 욕망 때문에 다행히 후대의 나르시스트들은 조잡하게 익사하지 않고 영웅적으로 전사하는 운명을 허락 받았다. 거울이 발명되어 호수로 갈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런 복잡한 욕망의 회로에 포획되면 각자는 승인을 위한 생사투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인정투쟁은 우리의 문화 안에서 복잡하고 세련된 형태로 다양하게 전개된다. 농산물 경진 대회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콘테스트, 대회, 경연장, 오디션들이 이런 예들이다. 더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나르시스 호수 면을 3D 스크린의 하이퍼 리얼 모니터로 버전업 시킨 영상시대에 이르러 이 생사투의 전선은 훨씬 치열해졌다. 코갓탤, 슈스케, 스타킹, 나가수 등등의 내전뿐 아니라 파핀 인터네셔널, 미스 유니버스, 월갓탤 등 국제전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총알 대신 눈물을 장전한다고 해서 전선의 살벌함이 누그러지는 것은 아니다. 초창기 MBC 나가수... 프로에 탈락한 선배 가수 때문에 눈물을 쏟은 경연자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다. 총알의 알레고리를 벗어던진 이 순수한 눈물에서조차 이 싸움은 그 대상을 복잡한 이중성의 장막 안에 은폐시킨다. 경쟁에 나선 선수들에게 허용된 낭만의 정서, 그 범위를 오판해서는 안된다.

3. 사진들
아기를 업고 춤추는 듯한 동작으로 카메라 앞에 선 여인의 승인투쟁은 아마 실패한 것 같다. 다소간 요란해 보이는 그녀의 동작에서 어떤 승리의 기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여인의 표정은 패자의 그것이 아니다. 축제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모두 단지 즐겁기만 한가. 그렇지 않다. 노래자랑은 내가 살고 네가 죽건, 내가 죽고 네가 살거나 해야 한다. 여기에 어떤 단서나 사족을 달 수 없다. 그런데 무엇이 그녀로부터 저런 강렬한 표정과 동작을 끌어내는가. 카메라인가. 자신을 정면으로 향한 카메라. 사진작가를 향해 여인은 이런 말을 들려주는 것 같다. 내게는 희망이 있어요. 그렇다. 이 희망이 그녀가 보여주는 저 불가해한 나르시시즘의 정체다. 하지만 그 원천이 가려져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충분히 들키지 않고 있다. 내 판단으로 이 ‘충분히 들키지 않았음’을 재현하는 방식이 이 작품에서 빛나는 부분이다. 오른쪽 어깨선 너머에 살짝 걸쳐진 한줌 까만 것, 하지만 이 희망의 기미는 사진 전체를 수상한 나르시시즘의 분위기로 동요시킨다. 여기서 나는 한번 균형을 잃고 넘어 나자빠진다.
축제용의 거대한 줄다리기인 것 같다. 나르시시즘의 거울 앞에서 관객들이야말로 가장 비겁하고 불온한 세력들이다. 판단자인 그들이 언제나 동시에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먼저 다수이고, 다채로운 높낮이에 처하고, 초연한 무관심으로 위장하기 위해 팔짱을 끼거나 질투하는 시선을 감추기 위해 선글라스를 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숲 속 그늘 아래서 하이데거가 세상사람(das Man) 이라고 불렀던 익명의 수평적 대중으로 퇴각해 있을 때에는 또 각각 때로 눈물에 젖기도 하는 맑은 눈으로 정확히 대상을 투시하기도 한다.
노부인은 승리했다. 노병이 승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이 귀한 승리의 모든 의미와 가치를 향유할 자격이 그녀에게 있다. 그녀 자신도 전존재를 경쟁하여 얻은 이 명예로부터 그냥 겸손하게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 가슴께에 승리의 징표인 동그란 메달을 그녀의 손이 떠받치고 있다. 이 손이야말로 그녀가 치른 모든 투쟁의 기억들을 낱낱이 간직하고 있는 증언자다. 이 나이 든 나르시시스트는 이 승리를 자축할 메달을 따로 준비 할 만큼 노회하다. 그녀의 신체 표면에 포진한 모든 동그란 것들, 안경, 반지, 장신단추, 헤어스타일, 그리고 마침내 얼굴까지. 이 모두가 삶의 각 장르에서 획득한 메달들, 즉 승리의 환유들이다.
노신사1의 시선이 카메라를 비껴간다. 육신은 양복 안에 갇혀있고, 그의 자세는 관습 틀에 묶여있다. 여기서 넥타이는 패션이 아니라 그를 세속의 예의라는 전승(傳承)에 걸어 묶는 밧줄이다. 그는 승인투쟁에서도 패배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함은 얼굴에서보다 먼저 양복 소매 아래로 드러난 양손에서 감지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결과에 청종할만큼 지혜로운 경륜이 그 모습에서 새로운 품위로 살아난다.
노신사2는 그와 구분된다. 두 사람은 먼저 외모나 옷차림보다 손 모양 그리고 대지를 디디고 선 두발의 간격에서 확연히 대조된다. 거의 파시스트적 속도로 근대화를 이룬 대한민국이 향유하는 모든 문화들, 그것이 권력이든 세속적 성공이든 타락한 왜곡상이든 이 모든 것들을 끌어온 것은 저 손이다. 그의 상반신을 마치 액자처럼 오롯이 담아내는 듯한 뒤편의 철골구조물. 그것을 저런 높이로 끌어올린 것도 크레인이 아니라 바로 저 손이다. 노래자랑에서 승리하여 목에 건 메달을 지금은 저 위치에 두고 있지만, 집으로 가면 곧장 위치가 바뀔 것이다. 왼쪽 가슴으로 올려붙여 새로 달아놓을 것이다. 훈장이든 메달이든 역전의 용사들은 그곳에 달린 것만을 진정으로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노병의 나르시시즘은 노래자랑의 생사투에서 다시 한 번 투명하게 확인된 셈이다.
노신사1은 의복 안에 갇혀있지만, 노신사2는 복장을 밀어내고 있다. 옷이 육체에 광채를 주는 게 아니라 거꾸로 벌어진 어깨와 단단한 다리가 의복에 승자의 윤곽선을 부여하고 있다. 이 사진은 나르시시즘이 어떻게 패션을 통제하는 지까지 보여준다.
한 여자가 서 있다. 노인2를 도드라지게 했던 손은 아예 뒤로 감추어져있다. 주인공은 먼 손 없는 여인 혹은 손을 거부한 여인이다. 손 대신 살짝 흐려진 초점으로 쇼올인지 다른 장식인지가 불분명한, 늘어진 까만 천이 왼쪽 정강이 아래로까지 흘러내려가 있다. 여인의 까만 원피스 아래로 흘러내린 이 정체불명의 잉여. 사진에서 여인의 신체를 오른쪽 아래로 완강하게 당겨놓는 듯한 이 형상이 처음에는 사진 구도의 균형을 교란시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러 번 천천히 보니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만일 그게 없었더라면 여인의 모습은 사진의 중앙에 겅충 매달린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한층 불안한 구도를 형성했을 것 같다.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가려보라) 배경을 이루는 운동장과 들판의 경계가 가슴께로 올라붙어 있는 탓이리라.
목에 건 메달도, 화려한 외모도 없는 이 여인. 하지만 머리, 옷, 신발의 패션이 오직 흑백 뿐인 이 여인의 나르시시즘은 망설임 없이 카메라를 향해 바라보는 단호한 눈동자와 도톰하게 다문 입술 사이에서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삐져나온다.

Ⅲ. 권순관, 시선의 문법
1. 직시
2011년 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던 영화 한 편이 아직 내 의식 안에 앙금처럼 가라앉아있다. 일본 포르노 산업의 제국을 건설한 전설적인 인물 요요추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이시오카 마사토 감독의 <떠오르는 성의 나라의 요요추>(Yoyochu, in the land of the rising sex)다. 주인공 요요추는 TV 토크쇼에 나와 ‘상대를 알려거든 그 눈을 똑바로 보라’고 말한다. 사업에서든 창작에서든 공부에서든 심지어 섹스에서든 이것이 변함없는 황금률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업 성공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하는데 심지어 열댓 살의 어린 중학생 딸에게까지 이렇게 충고한다. ‘섹스 중에도 똑똑히 상대를 보거라. 그리고 남자가 네 눈을 똑바로 보고 있지 않으면 절대 그를 믿지 마라’
문화적 차이 탓이겠지만 이런 말들이 조금 놀랍게 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선의 문법에서 상대를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는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것, 도발하는 것, 전의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 숨겨진 무엇인가를 까발려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 등등이다. 영화에서 배우들이 카메라 보기를 절대금기로 하는 것은 이런 시선의 문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곧 관객의 서신이니 영화에서 배우가 관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 순간 영화적 상황은 끝장이다.
하지만 요요추의 말에도 뭔가 의미심장한 게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눈과 눈이 부딪치는 데서 결판나게 되는 삶의 문제들이 있으니까. 상대를 정면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 풀어야할 문제들을 외면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직시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선의 권력양식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분명히 거기에 개입한 시선 권력들의 쟁패에 의한 것일 터다. 권순관은 그러한 불온한 힘을 시선에서 철저히 거세시킴으로써 요요추적 시선의 문법을 거부한다.

2. 탈초점
그 거세 방식은 시선의 탈 초점화다. 권순관의 <소파에 앉아 있는 여자>에서 남녀의 시선은 좌, 우로 비켜간다. <소파에 앉아있는 남자>의 시선은 고독하게 왼쪽으로 틀어져있다. <담배 피우는 남자>에서는 어슷하게 상, 하로 비켜서있고 <앉아 있는 여자를 바라보는 여자>는 탈주하는 하나의 시선 위로 희망 없이 다른 하나의 시선이 포개진다. <바닥에 누워있는 여자>에서는 시선들이 초점 없이 좌, 우, 상으로 조금 더 복잡한 투시선을 그리면서 흩어진다.
눈길 닿는 것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시선들이 한 번도 교차하지 않고 제각각 비켜간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모든 눈동자가 탈 초점화한 채 어긋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냥 초점을 잃은 것과 탈 초점화는 구분해야 한다. 양자의 차이는 단순한 능동, 수동의 차이를 넘어서서, 존재, 비존재의 차이에 결부된다. 탈 초점화하는 시선은 단순히 외면하는 시선과도 다르다. 후자는 그저 봐야 할 것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탈초점화는 다른 시선의 야심을 드러내는 투시전략으로서 상하 전후좌우 등 전방위 공간을 시각장(視覺場 )안에 끌어들인다.
이때 이 시각장은 이미 육체적 투시의 문턱을 넘어선 사념의 영역이라고 해야 한다. 문명사에서 가장 위대한 관념론자인 플라톤이 ‘본다’(idein)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여기서부터다. 초점을 지워서 투명해진 시선이라야 비로소 본질직관(Idea)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대화편『국가』7장에서 소크라테스는 대화 상대인 글라우콘에게 ‘본다(idein)는 것은 안다(episteme)는 뜻’임을 설득시키려 애쓴다. 플라톤이 대상을 초점화하며 투시하는 인간의 눈을 그토록 조롱했던 이유는 그것이 오직 허깨비(eidolon)만을 보기 때문이다.
권순관은 이런 시선의 문법을 자의식 안에 포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연작의 결론에 해당하는 <거실에 서서 생각에 잠긴 남자>, <생각에 잠겨 거울을 바라보는 여자> 라는 작품이 탄생했을 리 없다. ‘생각한다’(noein)는 것은 플라톤이 정확히 지적했던 것처럼 ‘영혼이 시선으로 작동하는 방식’(theorein)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3. 얼굴의 현상학
얼굴사진들이 나를 넘어져 자빠지게 한다. 처음 보는 낯선 양식의 이 사진들.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것은 사진으로 위장한 인식론적 물음 인가. ‘얼굴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하는 일 정녕 쉽지 않다. 중추기관인 두뇌에 가장 가까이 연결된 감각기관 이목구비의 배치도가 얼굴인가. 얼굴의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표정이다. 표정은 쉽게 얼굴도 등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정은 얼굴이 사건화하는 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도레미파... 일곱 음계로 숱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음악은 단순한 신비지만, 눈, 코, 입 세 기관만으로 거의 무한에 가까운 표정을 만들어내는 얼굴은 숭고한 신비다.
이 숭고한 신비가 얼굴을 미궁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다. 얼굴이란 무엇인가. 그냥 직설적으로 말해서 칼을 든 성형외과의의 손에서 새롭게 탄생하기도 하는 어떤 것 아닌가. 그러나 얼굴은 표정도, 수술대에 오르는 눈코입귀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현상학자 레비나스는 이렇게 답했다. “얼굴은 하나의 무상명령, 절대적 지상명령, ‘사랑하라’다”
‘사태자체로!’(zu den Sachen selbst!)를 모토삼아 본질직관을 목표로 하는 정교한 철학 방법론 현상학이 내린 이 결론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레비나스를 이런 답으로 끌어간 것은 하나의 오해, 치명적인 오해 탓이다. 그것은 얼굴을 표정으로 간주한 것이다. 타자(autre)와 타인(autrui)을 구분한 이 현상학자는 정작 구분해야 할 얼굴과 표정은 구분하지 않았다. 타자의 얼굴에서 저항할 수 없는 연민을 느끼고 내가 사랑하고 환대해야 할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타자는 타인이 된다. 그러나 이때 레바나스가 말하는 타자의 얼굴이란 단지 타자의 표정에 지나지 않는다. 타자성, 상처 받을 가능성, 무한한 연민 운운하는 게 그 증거다.
내 생각에는 권순관의 답이 조금 더 사태자체에 가까이 다가서있는 것 같다. 그 답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표정을 걷어내라. 얼굴이 보인다’ 무표정과 탈 표정은 다르다. 무표정은 여전히 표정의 한 양식일 뿐이지만, 탈 표정은 얼굴을 덮고 가리는 ‘표정’이라는 베일을 걷어내는 것이다. 결국 탈 표정은 탈 초점화된 시선의 확장이다. 어쨌든 이 사진은 단지 모델들의 얼굴을 틀어서 찍은 액자 자신도 멋 부린 명암사진도 아니다. 이것은 사진으로 던지는 현상학적 물음 ‘얼굴이란 무엇인가?’다.

Ⅳ. 김옥선, 세계-내-존재
1.기분
유진도 물 안에 있고, 그의 딸 사라도 물 안에 있다. 그리고 바위들도 여기저기 흩어진 채 물 안에 있다. 그런데 유진과 사라가 ‘물 안에 있음’과 바위, 해초, 자갈, 모레 등이 ‘물 안에 있음’은 다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하이데거가 이 물음에 명쾌하게 답한다. ‘유진과 사라는 어떤 기분(Stimmung)으로 있고, 다른 것들은 그냥 있다’ 그는 옷장이 옷 안에 있는 것과 사람이 방안에 있는 것의 차이를 통해 세계-내-존재라는 인간의 비범한 존재가능성을 경탄스러운 논리로 설명한다. 기분은 단지 종잡을 수 없이 명멸하는 덧없는 정서가 아니다. 그것은 정확히 공간의 정체를 내게 폭로시키면서 나로 하여 이렇게 혹은 저렇게 존재하도록 끌어가는 심원한 힘이다.
내가 기분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기분이 나를 선택한다. 기분은 ‘세계’로부터 내게 오는 것이고, ‘안에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로 말미암아 나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그런 기분을 막아설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이 실존적 정서에 속수무책으로 포획될 뿐이다. 가령 기분은 내가 모임 있는 집회 장소에 문고리를 잡고 들어설 때,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없어? 장소 여기 맞아? 등등 머리 안에 솟구치는 판단, 비교, 분석 등등에 앞서 내가 속한 세계, 혹은 공간을 선 판단적, 전술어적으로 내게 알려주는 신비한 폭로자다.
물 안에 있는 유진과 사라. 바로 그런 방식으로 섬 안에 있고, 뭍 안에 있고, 세계 안에 있다. 세계란 지금 그들이 벗은 몸을 담근 물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유진, 사라 각각을 덮치는 저 기분, 그 덧없는 정서는 그들의 세계 안에 있음이라는 존재의 진리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때의 세계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상과는 다른 것이다. 유진, 사라가 유일무이한 것처럼 그 세계 또한 유일무이하다. 이런 세계 곧 살과 뼈, 뛰는 심장과 흐르는 피를 갖은 한 인간의 한 생애가 실행되는 공간은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주관적이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각자의 생활세계다.
새벽의 몽상가 단이 기이한 자세로 앉은 채 카메라를 향해있다. 그 모습이 카프카의 『심판』의 주인공 K를 연상시킨다. 서른한 번째 생일날 밤 두 명의 처형자들이 K를 채석장으로 데리고 가서 어딘가에 앉혀보려고 이리저리 애써본다. 그러자 K가 스스로 앉기에 적당한 곳으로 찾아보지만 마땅치 않다. 이렇게 앉아도 불편하고 저렇게 비틀어도 불편하다. 단이 앉은 모양새가 그렇다. 어찌 앉은 자리가 저런 자리인가 싶다. 그나마 앞에 두 손으로 펼쳐 든 책이 이 어색한 자세가 주는 거북한 느낌을 누그러뜨리고 있지만 그녀의 얼굴에 일렁이는 불안한 느낌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항해자 쉬민이 해변의 돌밭에 앉아 있다. 헝클러진 머리, 산만한 표정, 그녀가 앉은 장소 돌밭, 이런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그녀의 얼굴 위로 어떤 근본 정서, ‘불안’(Angst)을 환기한다. 기형이라고나 할 만큼 큰 손과 발은 이런 정서를 강화시킬 뿐이다. 얼핏 생각하면 큰 손으로 무엇을 잡거나 큰 발로 대지 위에 서는 게 안정감을 줄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돌밭 안에 있음’은 그런 큰 수족의 장점을 무용하게 만든다. 결국 그녀의 표정을 저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현실이리라.
어쨌든 이런 맥락들을 카메라로 붙잡아내는 김옥선의 눈썰미가 나를 나자빠지게 한다.

2. 이해
휴머니스트 캐빈이 덤불과 잡초로 덮인 숲길을 바라본다. 자신이 던져진 세계 안에서 자기 쪽으로 밀려드는 기분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캐빈은 그런 기분에서 몸을 틀어 숲으로 뻗은 길 쪽에서 자신의 존재가능성 탐색하고 있다. 그렇게 숲길로 몸을 돌리게 하는 힘은 그가 지닌 휴머니스트의 기질이 아니다. 브루디외가 아비투스(habitus)라고 잘못 이름 붙인 이 특이한 육체의 형세는 지금 이 순간 그가 던져진 세계에 반발하며 보여주는 존재의 반동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우선은 기분에 잠겨 드는 수동성에 반발하여 그의 의식이 적극적으로 세계의 정체해명에 개입하는 것이고, 육체가 완강한 자세로 그 의도를 구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기투(Entwurf)라고 이름 지었다. 이 시도는 인간이 자신이 처한 세계의 질감, 정체 등을 이해하려는 처신의 일부다.
케빈이 숲길로 기투한다면 자연주의자 리치는 수평선으로 기투한다. 호명하는 기표, 자연주의자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벗은 몸은 그런 기투에 합당하다. 그런데 지체가 길어지는 듯하다. 곧 나서야 한다. 박아놓은 솟대에 걸린 옷들 앞에서 자연주의자가 그런 수치를 당할 수는 없으니까.
끝으로 지평선 기투하는 방랑자가 있다. 하늘은 펼치고 땅은 뻗는다. 두 세력이 지평선에서 만난다. 방랑자 로스의 돌린 등이 그 지평선을 막아놓고 있다. 하지만 막아놓는 것 따위는 기투와 아무 상관이 없다. 끊어놓거나 삭제하는 것, 그것이 기투다. 로스는 막아서 있는 게 아니라 삭제하고 있는 것이다. 기투는 이렇게 몸을 던져 무엇을 도모하는 능동적인 처신이다.
모든 경우에서 다 그렇지만, 사진을 볼 때도 우리의 시각과 사유는 예외 없이 동시에 가동한다. 비유컨대, 사유는 정신이라는 무대를 연출하는 무소불위의 감독이다. 그래서 그는 눈앞에 놓인 한 장의 사진에서 요철의 입체성을 기민하게 재구성해내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그것의 핍진성을 생생하게 무대화한다. 그러나 사유가 그 모든 볼륨, 입체 안으로 사진 안의 모든 것을 환원시켜 재무대화하는 순간 사진적 상황은 끝이다.
사진 공간의 본질은 입체성이 아니라 평면성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을 왜 우리는 그렇게 쉽게 망각하고 마는가. 사진이 우리에게 보내는 모든 호소에 귀 막게 될 때 우리는 정보를 얻는 대신 아름다움을 놓치고, 과학을 숭배하는 대신 미학은 홀대하고 만다.
방랑자의 등짝을 붙잡아 입체의 볼륨을 끌어들이려는 사유의 불온한 권력에 맞서 삭제의 단호한 기투, 혹은 사진적 진리를 보여주는 김옥선의 카메라가 나를 넘어 나자빠지게 한다.

3. 실존
눈을 담요로 깔고 누운 빅터에게서 두드러지는 것은 유진의 불안이나 로스의 강박 같은 것들이 사라진 어떤 따뜻함, 또는 평온함이다. 그가 감히 눈을 담요 삼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가 누운 나무 위로 등을 대고 있는 게 아니라 그가 누우니 나무도 누웠다.
그레첸이 멈춰선 들판은 평화롭다. 평소 그토록 위압적이던 야자수들도 알아서 멀찍이 물러서 있다. 잠시 멈춰선 방랑자의 이 고즈넉함에 산야의 모든 풀, 벌레, 나무가 함께 축복해주는 것 같다. 그녀의 시선 또한 이 풍경 안의 모든 것들의 결, 켜, 주름과 단층과 평행을 이루며 화해하고 있다.
사라는 갈대숲의 잔설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골목을 배회해 돌아다니던 샐리는 벽에 기대어 음악에 취해있지만 있지만 이들도 그레첸에 접속되어 세계-내-존재의 실존성을 구현하고 있다.
지눌이 말이 생각난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선다. 카메라로 넘어진 나는 다시 카메라를 붙들고 일어선다.

직면을 보며


한홍구_성공외대 교수

어떤 상황이나 사람과 ‘직면’한다는 것은 최소한 불편하고 어쩌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다. 나 자신도 눈에 힘이 들어가야 하니 자연스럽지 않고, 이 불편한 상황이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게 된다. 불편하거나 불쾌하기는 상대방도 마찬가지 일거다. 오죽하면 ‘눈깔아’란 말까지 나왔을까. 많은 사람은 어떤 불편한 상황과 ‘직면’하기보다는 눈길을 살짝 돌려버린다. 눈길을 돌려버리는데 딱히 이유가 필요할까? 그저 바빠서, 귀찮아질 것 같아서, 휘말리기 싫어서, 나한테 이익이 되지 않아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감당하기 힘들어서, 불편해서, 괴로워서, 무서워서 그 순간을 지나가 버린다.

어떤 상황과 ‘직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적 행위이지만, 다른 행위로 이어지는 과정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어려운 문제와 기껏 ‘직면’했지만, 금방 눈깔아 버릴 수도 있고 불편한 상황에서 뒷걸음쳐 물러나거나 시선을 돌리며 종종 걸음으로 지나가버릴 수도 있다. 반면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처지를 마음속으로 공감하며 자기가 선 자리를 지키며 팽팽한 ‘대치’ 상태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어느 한 쪽이 ‘대치’의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상황 속으로 뛰어들면서 치열한 ‘대결’로 비화하기도 한다.

역사는, 그리고 그 역사의 끝자락에 붙어있는 오늘을 사는 우리는 현실과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기껏 도망을 쳐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고, 눈길을 돌려본들 물끄러미 시선에 잡히는 풍경과 사람들도 결코 편하지 않다. 영어권에서는 “I'm fine, and you?”란 인사를 입에 달고 살지만, 실제의 삶속에서 삶이 편하고 괜찮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인간이란 존재는 불편한 현실과 직면하지 않는, 않아도 되는, 않는 것이 현명한, 않아야 하는 수천가지 이유를 만들어내며 산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꾸 불편한 현실과 대면하라고 부추긴다. 더 심한 사람들은 십 수년도 아니고 수십 년 전에 있었던 ‘나와 상관없는’ 일을 가져다가 눈앞에 들이민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감당하기 힘든 데 말이다.

이번 ‘직면’ 전시에 나온 이재갑과 손승현과 이강우의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은 지금 당장 굴삭기에 파괴되는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도 아니고, 김진숙이 하루하루 날짜를 더해가며 버티는 85호 크레인도 아니고, 토건족의 욕망이 꿈틀대는 4대강 공사현장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절대다수 구성원들에게 낯선 곳일 수밖에 없는 일본의 강제징용 현장, 그냥 잊혀진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애써 지워버린 혼혈인들, 도대체 수십 년간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비전향 장기수들, 이제 초등학생들에게는 애써 설명해주어야 할 유물이 되어버린 연탄의 원재료를 캐내던 탄광촌 풍경이 이재갑, 손승현, 이강우 세 작가가 ‘직면’ 전시를 위해 굴곡 많던 한국현대사에서 불러낸 모습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근대란 것이 워낙 정신 사나운 것이지만, 우아하게 ‘압축적 근대화’라 불리는 한국의 근대에서는 김수영 식으로 표현한다면 ‘제 정신을 갖고 사는 놈을 찾아 볼 수 없다’ 할 정도로 사람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한국의 현대사는 해마다 전환기였고 달마다 격동기였다. 어느 해고 ‘위기’, ‘대란’이 빠진 적이 없었다. 딱 100년전 나라를 뺏기고 식민지로 전락했던 한국은 분단과 전쟁과 학살과 군사독재와 민주화운동과 산업화와 노동운동의 격랑을 숨 쉴 틈 없이 겪었다. 그리고 지금 국가로서의 한국은 세계 10위권 이내에 드는 어마어마한 부자나라가 되어버렸다. 보통 국민들은 돈이 없고,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없어서 그렇지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은 “내가 제일 잘나가”를 구가하고 있다. 2차대전이 끝났을 때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세계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걸었던 런던이 인구 백만에서 인구 천만으로 팽창하는데 3~400년이 걸렸다면, 서울은 딱 40년 만에 천만 고지를 돌파했다. 어느 나라나 ‘근대’라는 시기에 경험한 속도감은 시골영감이 청룡열차 탄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는 이 청룡열차의 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몇 배 빨랐다는 뜻이다. ‘주마간산’과는 비교가 되지도 않게 빠르게 지나가 버린 역사 속에서 우리는 뭐 하나를 제대로 ‘직시’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유난히 울퉁불퉁했던 우리 역사에서 직시해야 할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이재갑과 손승현과 이강우가 내놓은 작품들이 굴곡 많은 한국현대사를 다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작가들은 식민지 지배와 분단과 산업화의 첨예한 단면을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현장은 시간이 정지해버린 듯 한 먼 과거 속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의 모습도 지금 이 순간 첨예한 역사의 주역이라기보다는 한 때의 시대적 격랑이 마음과 몸에 짙은 흔적을 남겨놓은 그런 사람들이다. 역사란 것은 원래 이긴 사람의 편에 서는 고상한 물건이었던지라 패배자, 소수자, 찌질한 자, 쩌리, 루저의 이야기는 잘 담지 않았다. “이대로는 눈을 감을 수 없소”라 몸부림 쳤지만, 한 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며, “그걸 어떻게 말로 다 해요...”라며 어깨만 들썩이며 울다 말문을 닫아버린 사람도 어디 한둘이겠는가.

이재갑과 손승현과 이강우 세 작가의 공통점은 한국근현대사의 역사적 궤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작품을 잘 뜯어보면 이들은 모두 ‘맥락’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긴 단순한 호고벽이 아니라 역사를 끊임없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 이해하는 사람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맥락을 벗어난 오늘은 없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오늘은 없다. ‘지금 이 순간’과 정직하게 대면하려는 사람들에게 오늘의 문제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를 이해하는 작업은 필수적인 일이다. 오늘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역사를 들여다본다면, 그것은 한갓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일을 넘기 어렵다. 현실문제의 역사적 뿌리를 들여다보지 못한 채 해결책을 모색한다면 그저 지엽말단에 매달리다 끝나버릴 것이다. 이들 작가들은 각각 일제시대의 징용 문제, 분단독재시대의 비전향장기수 문제, 산업화시대의 탄광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했는데, 모두 공통적으로 오늘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렌즈를 과거의 역사 속으로 또는 역사화된 현실 속으로 돌렸을 뿐이다.

역사란 가락동 청과물시장 같아서 없는 것 없이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이 다 포괄되어 있다. 어느 누가 넓디넓은 세상의 헤어날 수 없이 많은 굽이굽이에서 일어난 일을 다 기억할 수 있을까. 한 개인이나 집단에게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강력한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누군가가 나서서 ‘잊혀진 것을 찾아서’란 깃발을 들고 너무나 평범하고 흔하게 다 알다보니 아무도 기록하지 않아서 잊혀진 것을 찾아내는 일을 업으로 삼기도 한다. ‘잊혀진 것을 찾아서’가 유행한다지만, 잊혀진 것이 모두다 현실로 불려 올라오는 것은 아니다. 잊혀진 것과 여러 경로로 직면한 사진가, 다큐멘터리 작가, 소설가, 역사가, 시민운동가 등이 있어야 잊혀진 것이 부름을 받을 수 있지만, 이런 사람이 열심히 발품을 판다고 잊혔던 것이 모두 다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사진가나 역사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잊혀진 것을 복원하려는 사회적 힘을 타지 못한다면 그들의 작업 역시 망각의 담장을 넘지 못하고 말 것이다.

사진의 힘, 이미지의 힘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 컷의 사진을 보고 그저 “아!”하고 탄식이 나오거나 가슴 깊숙한 곳을 찔린 듯 한 느낌... 이것이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사진의 힘일 수 있다. 그런데 강제징용 현장을 찍은 이재갑의 사진은 그야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 사진의 설명을 보지 않았다면 바다위로 삐죽이 나온 콘크리트 구조물이 해저탄광의 배기구인지 알 길이 없다. 폭풍우 치던 어느 날 이 배기구로 물이 넘어 들어와 해저탄광에서 일하던 노동자 183명(이중 조선인은 134명)이 고스란히 수장되었다는 기막힌 사연을 그저 사진만 보는 관람객들이 어찌 알 수 있으랴. 덩그러니 바다에 떠 있는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바다의 가미가제인 10대 소년병들의 인간어뢰(또는 자살모터보트)가 출발하던 곳인 줄 그 누가 짐작하랴. 설명을 보지 않아도 스산한 공포감이 밀려오는 사진도 있다. 시모노세키의 선착장 사진은 공포영화의 촬영지로 쓰면 딱 좋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으스스한 곳이다. 지옥이 한때 성업 중이었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가버리고 난 뒤 폐허가 된 건물이라면, 아마 딱 이런 느낌일 것이다. 이재갑 작가도 갑작스런 비로 차 속으로 피했지만, 차 속까지 엄습해온 당시의 공포감에 사로잡힌 채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작가가 오키나와에 갔다가 이곳에 강제징용 된 조선인들의 사연을 담은 ‘한의 비’에서 고향 주소를 발견한 섬뜩한 사연은 우리네 개인사가 민족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음을 세포 하나하나까지 느끼게 만든다. 그저 일본 어디로만 알았던 그곳이 바로 할아버지가 끌려갔던 곳이다. 작가에게는 조선청년들이 무자비한 탄압을 받다 잠든 치쿠호 지역이 “평생 잊지 못할 참혹하고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곳이 어디 이곳뿐이랴. 일본의 철도 침목 하나하나에는 돌아오지 못한 조선청년들의 원혼이 서려있다. 한번 꽂히면 운명처럼 벗어나기 힘든 무엇이 있다. 고향에 가고 싶다던, 엄마가 보고 싶다던 수십 년 전의 지하로부터 아직도 웅얼거리는 그 고통스러운 현장을 작가는 벗어날 수 없다. 15년을 발로 뛰었지만, 작가는 목표의 겨우 삼분지일 남짓 돌았을 뿐이다. 이재갑의 사진은 카메라가 아니라 가슴으로 찍은 사진이다. 관객들도 마땅히 마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분단된 한국은 비전향장기수라는 독특한 인간집단을 낳았다. 남파공작원과 빨치산 출신을 주축으로 약 100 여명에 달하는 이들이 감옥에서 보낸 기간은 평균 31년 4개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장기수인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는 ‘겨우’ 27년을 감옥에서 살았으니 한국에 데려오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십 년 간 바깥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된 채 강제전향의 압박을 견뎌낸 이들의 존재는 민주화 이후 비로소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 역시 분단이라는 역사의 격랑에 휩쓸린 희생자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주체적인 혁명가였다. 누가 그들에게 혁명에 나서라 등 떠밀지도 않았고, 혁명의 길에 나선 뒤에도 남파공작원이 되거나 빨치산으로 입산하라고 강요받은 것도 아니고, 살인적인 강제전향공작이 가해질 때 누가 그들에게 비전향을 강요한 것도 아니다. 달리 방법이 없었기도 했지만, 그들은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서 비전향장기수가 되어 수십 년 세월을 보낸 것이다. 수구언론은 그들의 주체적 선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기수들의 다수가 6ㆍ15정상회담의 결과 북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이들을 ‘미전향 장기수’라 불렀다.

나도 비전향 장기수들과는 나름 깊은 관계를 맺었고, 수십 명의 장기수들을 상세히 인터뷰하여 여러 권으로 된 구술자료집을 낸 바 있다. 그러다 보니 손승현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장기수 선생님들의 사연을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비전향 장기수는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북으로 돌아가 가슴에 주렁주렁 훈장을 달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은 참으로 낯설기만 하다. 손승현은 그렇다고 비전향장기수들의 일상을 찍은 것도 아니다. 사진 속의 그들은 나름 자세를 잡고 앉아 있거나 서 있다. 그들이 희생자만이 아닌 주체적 혁명가였기 때문일까? 우리만 그들을 직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손승현의 사진 속의 장기수들은 수지침을 놓는 유운영과 먼 곳을 바라보는 고성화의 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카메라를, 하여 우리를 직시하고 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이종환 선생의 사진이었다. 나이가 많다고 일찍 내보내주어 그렇지 투옥된 날짜로 치면 세계최장기수의 타이틀을 차지했을지도 모르는 분이다. 까까머리 전두환, 노태우가 육사에 들어가던 해 감옥에 들어가 그 둘이 차례로 대통령을 지내고야 바깥 땅을 밟은 일만오천일의 장기수. 나는 큰 기대를 갖고 이종환 선생을 인터뷰했다. ‘정보’의 차원에서 보면 이 인터뷰는 거의 건진 것이 없었다. 전쟁 전의 활동은 오래 되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시고, 전쟁 중에 유격대원으로 넘어오다가 잡혔으니 선생 스스로 말씀하신 것처럼 선 떨어진 조직원이었고, 뭐하나 내세울 것 없는 실패한 혁명가였다. 40년 간 면회도 한번 없는 곱징역을 살며 운동 나가 꽃밭 만지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니 옥중투쟁의 이야기도 별로 없다. 두 딸을 잃어버린 이야기도, 엄청난 고문을 당한 이야기도 마치 남의 일처럼 무덤덤하게 얘기하시던 선생은 석방되던 얘기를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세요? 내보내준다는 건데?”라는 내 질문에 선생은 “동지들을 두고 혼자 먼저 나가게 되어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말없이 선산을 지킨 굽은 소나무. 나는 이종환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갑자기 이 보잘 것 없는 수줍은 노인에게 최고의 영광이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남의 집 뒷마당 나무 그늘 속으로 비치는 햇살, 손승현 작가가 대신 선물한 것 같다.

유운영 선생은 창가에 앉아 수지침을 놓고 있다. 비전향 장기수 중에는 침의 고수들이 많다. 수십 년 간 그들은 일체의 의료행위로부터 배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었기에, 침이 유일한 치료수단이었다. 다른 약을 쓰지 않은 몸이니 침의 효과가 있고 없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동료 비전향 장기수들과 자신의 몸을 만만한 ‘실험도구’로 삼아 실습을 거듭했고, 어떤 선생님은 수십 년 동안 자기 자신에게 침을 놓는 자침을 십만 방도 넘게 놓았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삶의 고단한 계단을 다 내려와 구부정하고 힘 빠진 모습으로 앉아있는 노인. 누가 그를 무려 45년을 감옥에서 보낸 세계 최장기수라고 볼 것인가? 총각해방동맹 위원장이라는 유쾌한 타이틀과 달리 김선명 선생은 이날 따라 너무 처량해 보인다. 혹시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동생네의 거절로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쓸쓸한 오후가 아니었을까. 선생은 출옥 후 딱 한 번 어머니를 뵈었다. 종잇장처럼 가벼워진 노모는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아들의 얼굴을 만지며 마음속으로 네가 환하게 보인다고 했다. 백살의 노모가 45년 징역 살고 나온 칠십이 넘은 아들을 앉혀놓고 네가 어른 말 안 들어서 그렇다고 타박하는 모습은 참으로 너무나 너무나 ‘한국적’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빨갱이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선생의 동생은 딱 한번 어머니를 만나게 했을 뿐, 선생은 어머니를 다시 뵐 수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북으로 송환될 때도 산소에 술 한 잔 올리지 못했다.

이강우의 탄광촌 사진은 탐욕스런 자본주의가 다 파먹고 떠나가 버린 스산한 근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똑같은 천변풍경을 찍었으면서도 1960년대 구와바라 시세이의 청계천 사진에 담긴 ‘낯선 우리’의 모습은 구질구질한 풍경 속에서도 체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하다. 이미 폐광이 되어버린 사북이나 고한과 달리 철암은 전보다 규모는 줄었지만 아직 채광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우리의 선입견 탓일까? 이강우가 찍은 철암천변의 세멘건물 어디에서도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다. 석탄을 다 파먹어서 사람이 떠나갔다면 덜 서글펐을런지 모른다. 아직도 탄은 엄청나게 남아 있지만 경제성이 없어서 더 팔 이유가 없단다. 사람도 마음이 비어버리면 금방 무너지듯 집도 사람이 떠나면 금방 폐가가 된다. 이곳은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다가 이제 모두 떠나버린 곳이다. 비어 있는 곳, 그런데 비어있는데 무겁다. 이강우의 사진은 비어있음의 무거움은 우리의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1980년대는 ‘사북사태’로 문을 열어 동구 사회주의 붕괴의 충격을 멍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 엄청난 질풍노도의 시대가 가버렸을 때, 우연이었겠지만 연탄의 시대도 끝이 났다. 6월항쟁이 끝난 직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7ㆍ8ㆍ9월 노동자투쟁이 일어났고, 소득수준의 향상과 주거문화의 변화는 주유종탄(主油從炭)을 가속화시키며 석탄을 변방으로 몰아냈다. 당연한 일이지만 석탄으로 먹고 살던 사람들의 삶에도 일찍 황혼이 드리웠다. 그의 다른 사진과 달리 탄광촌 풍경을 찍은 작품에서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가 애써 카메라에 담은 풍경도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강산이 변하는데 사람이야 오죽하랴. 변하지 않는 것은 상처뿐이다. 폐광촌 살린다고 휘황한 네온의 카지노가 들어선들 땅속 깊이 거미줄처럼 퍼진 갱도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될 길은 없다. 떠나간 사람, 남은 사람의 마음속에 남은 상처도 그냥 그대로다. 새로운 상처가 더해져 옛 상처를 잊을 뿐이다. 땅 속 깊이, 마음 속 깊이 상처를 입고 사는 사람들을 재개발의 욕망으로 끌어당기고, 날로 심해지는 진폐의 기침소리를 뒤로 물리고 이제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휘황찬란한 카지노는 눈에 핏발선 도박꾼을 불러들인다. ‘석탄산업합리화!’ 근대는 이렇게 모든 것을 ‘합리화’한다.

한국현대사는 외마디 비명 말고는 말이 설 자리가 없었다. 그저 불문곡직 잡아가고 죽이고 줘 패고 밀어붙이고 때려 부스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재갑, 손승현, 이강우는 각각 식민지지배, 분단, 산업화의 현대사를 이미지에다가 말의 힘까지 빌려 우리로 하여금 ‘직면’하게 한다. 이재갑은 무심한 풍경을 이미지로 남기는데 그치지 않고 장소의 역사성에 대한 설명을 담은 책을 여러 권 펴냈다. 손승현은 아예 사진 위에 비전향장기수 할아버지들이 남긴 글을 써버렸다. 이강우 역시 사진만으로는 이 기막힌 ‘합리화’를 제대로 보여주기 어려웠나 보다. 그는 수많은 사진이외에도 50분짜리 영상과 100여 편의 텍스트를 남겼다. 시각예술이 가진 ‘불립문자’의 오랜 ‘전통ㆍ악습ㆍ규범ㆍ버릇ㆍ고집ㆍ규칙ㆍ담벼락ㆍ합의’는 적어도 여기 ‘직면’전에서는 유효하지 않았다. 너무나 오래 동안 하소연할 곳이 없던 피해자들이 “그걸 어떻게 말로 다 해요”라며 울음을 터뜨리듯, 작가들도 “그걸 어떻게 한 프레임에 다 담아요”라고 하소연하는 듯하다. 말할 수 없던 한국현대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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